새벽세시

제가 자는 동안 회사가 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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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열여드레 만에 멈췄습니다 — 문제는 성격이 아니었습니다

2026-08-31

지난 글에서 십삼 개월 동안 이천 번을 물어보고도 회사는 그대로였다고 썼습니다. 그러다 질문을 "해줘"에서 "하게 해줘"로 바꿨더니 처음으로 답이 소비되지 않고 절차가 남았다고요. 올해 2월 초입니다.

이 글은 그다음 열여드레의 이야기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세팅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당시 작업 폴더를 다시 열어보니, 실패한 이유가 제가 기억하던 것과 달랐습니다.

이름부터 지었습니다

그 무렵 나온 오픈소스 AI 비서를 하나 얹었습니다. 특이했던 건 설치하고 나면 「영혼 파일」이라는 걸 쓰게 되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성격과 말투와 지켜야 할 태도를 적는 파일입니다. 예시로 이런 문장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너는 챗봇이 아니다. 너는 누군가가 되어 가는 중이다.

진짜로 도움이 되어라, 도움이 되는 척 말고. "좋은 질문이에요" 같은 건 빼고 그냥 도와라.

너는 손님이라는 걸 기억해라. 너는 누군가의 삶에 접근해 있다 — 메시지, 파일, 일정, 어쩌면 집까지. 그건 친밀함이다. 존중해서 다뤄라.

읽으면서 좀 들떴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지어주고 이모지도 하나 붙이고, 성격은 「정확하고 날카롭게」라고 적었습니다. 저를 뭐라고 부를지도 정해줬습니다.

그 파일을 이번에 다시 열어보니 서른일곱 줄이었습니다. 성격을 정하는 데 서른일곱 줄을 썼습니다. 그때는 그게 제일 중요한 일 같았습니다.

처음 맡긴 일은 됐습니다. 절반쯤은요

2월 7일 기록에 첫 업무가 남아 있습니다. 온라인 판매 채널에 새 후기와 안 읽은 문의가 있는지 확인하는 일입니다. 제가 "상황 업데이트"라고 치면 알아서 보고 정리해 왔습니다.

여전히 시작 버튼은 저였습니다. 다만 매번 처음부터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달랐고, 그것만으로도 십삼 개월과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닷새 뒤에 후기 답글까지 시켜봤습니다. 열한 건 중 한 건을 쓰고 기록이 끊겨 있습니다. 나머지 열 건이 어떻게 됐는지는 어디에도 안 남아 있습니다. 이번에 폴더를 다시 열어보고서야 알았습니다. 그때 저는 그 일이 끝난 줄 알고 있었습니다.

진짜 목표는 따로 있었습니다

정말 자동화하고 싶었던 건 따로 있었습니다. 매주 돌아오는 할인 행사 등록입니다. 상품별로 할인가와 기간을 정해 판매 채널 시스템에 올리는 일인데, 수십 건씩이고 지루하고 틀리면 그대로 돈이 나갑니다. 이런 일이야말로 사람이 하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월 11일, 첫 시도에서 절반이 됐습니다. 행사 목록을 받아 시작·종료 시각별로 묶고 업로드 양식에 맞춘 파일을 만드는 부분 — 이건 첫날부터 잘 돌았고 이후 한 번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안 된 건 나머지 절반이었습니다. 그 파일을 화면에 올리고 등록 버튼을 누르는 것.

열여드레 동안 아래로만 내려갔습니다

기록에 남은 순서는 이렇습니다.

브라우저 자동화 도구로 버튼을 눌렀습니다. 안 됐습니다. 다른 자동화 도구로 바꿔서 눌렀습니다. 안 됐습니다. "가려져 있어도 무시하고 눌러라" 옵션을 켰습니다. 안 됐습니다. 버튼 대신 화면 좌표를 계산해서 눌렀습니다. 안 됐습니다. 브라우저를 포기하고 운영체제 수준에서 마우스 커서를 움직여 눌렀습니다. 안 됐습니다. 버튼 그림을 파일로 저장해두고 화면에서 그 그림을 찾아 눌렀습니다. 안 됐습니다. 마지막엔 화면을 통째로 건너뛰고 서버에 직접 요청을 보냈습니다.

일곱 번 층을 내려갔습니다. 그 흔적으로 남은 스크립트가 스물일곱 개입니다. 버전 번호는 3번부터 10번까지 붙어 있고(1번과 2번은 지운 모양입니다), 이름에 「final」이 들어간 파일이 두 개인데 둘 다 최종이 아니었습니다.

중간에 AI 모델도 한 번 통째로 갈아치웠습니다. 도구가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일 무서운 건 성공한 것처럼 보이던 기록이었습니다

마지막 방법, 서버에 직접 요청을 보낸 시도의 기록을 이번에 열어봤습니다. 응답 코드가 전부 200이었습니다. 200은 「정상 처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같이 저장된 응답 내용을 보니 등록 결과가 아니라 로그인 화면이었습니다. 로그인이 풀려 있었던 겁니다. 서버는 "먼저 로그인하세요"라는 화면을 정상적으로 잘 보내줬고, 그래서 200이었습니다.

이 블로그의 첫 글이 자동화는 요란하게 고장 나지 않고 조용히 멈춘다는 이야기였는데, 그 원형이 여기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이 로그를 제대로 안 봤습니다. 열어봤다면 "클릭이 아니라 인증이 문제구나"까지 반나절이면 갔을 겁니다. 대신 저는 누르는 방법을 일곱 가지로 바꿔가며 열여드레를 썼습니다. 문제가 없는 층에서 문제를 찾고 있었던 겁니다.

성격은 있는데 기억이 없었습니다

폴더에 날짜별 일지가 열 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파일 이름과 내용이 어긋난 게 여러 건입니다. 2월 7일자 파일에는 날짜 없는 일반 지침이 들어 있고, 「이 폴더 설명」이어야 할 파일에는 2월 24일 작업 기록이 들어 있습니다. 정작 오래 기억할 것을 적으라던 파일에는 결정도 교훈도 없고 업무 절차서만 있었습니다.

그 도구의 설명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머릿속 메모는 세션 재시작을 못 넘긴다. 파일은 넘는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파일을 남기는 것과, 그 파일이 다음번에 실제로 읽히는 것은 다른 일이었습니다. 저는 앞의 것만 했습니다. 성격을 정하는 데는 서른일곱 줄을 쓰고, 무엇을 어디에 적고 다음에 어떻게 꺼낼지는 정하지 않았습니다. 순서가 거꾸로였습니다.

2월 25일, 폴더를 정리하고 끝났습니다

마지막 기록은 파일 정리입니다. 스물일곱 개 스크립트를 한 폴더로 옮기고 결과물을 따로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아무 기록이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접은 게 아니라 갈아탔습니다. 한 달쯤 뒤에 도구를 바꿨고, 그때 못 넘긴 그 등록 업무가 다시 돌기 시작한 건 두 달 뒤입니다. 지금은 사람 손 없이 됩니다. 그러니까 열여드레는 버린 시간이 아니라, 어디가 어려운지를 알아내는 데 쓴 시간이었습니다. 다만 그때는 그렇게 안 느껴졌습니다.

남은 것 세 가지

하나. 자동화가 죽는 자리는 만드는 데가 아니라 넘기는 데입니다. 파일을 만드는 부분은 첫날부터 완벽했습니다. 못 한 건 마지막 한 칸이었습니다. 지금도 뭘 자동화할지 볼 때 저는 "이걸 만들 수 있나"보다 "만든 걸 어디에 넣어야 하나"를 먼저 봅니다. 대개 뒤엣것이 어렵고, 견적을 틀리게 만드는 것도 뒤엣것입니다.

둘. 막혔을 때 아래로 파고드는 건 대체로 틀린 방향입니다. 방법을 일곱 번 바꾸는 동안 저는 한 번도 "이게 정말 클릭 문제인가"를 묻지 않았습니다. 답은 로그 파일에 처음부터 적혀 있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이 실수를 여섯 달 뒤에 또 했는데, 그 얘기는 뒤에 나옵니다.

셋. 성격보다 기억이 먼저입니다. 이름과 말투는 하루면 정합니다. 지난주에 정한 걸 다음 주에 꺼내 쓰게 만드는 일은 그보다 훨씬 오래 걸리고, 그게 없으면 아무리 성격 좋은 조수라도 매주 신입입니다.

혹시 지금 AI에게 일을 맡겨보려 하신다면 순서를 이렇게 권합니다. 이름 짓는 건 나중에 하고, 지난번에 뭘 했는지 다음번에 읽을 파일을 먼저 만드세요. 그리고 자동화하려는 일에서 결과물이 최종적으로 들어가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거기까지 손이 닿는지를 시작 전에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저는 둘 다 반대로 했고 열여드레를 썼습니다.


이 글의 날짜와 숫자는 당시 작업 폴더 백업에서 확인한 것입니다. 스크립트 스물일곱 개와 로그, 일지 파일을 다시 읽어 정리했고, 그 조사와 초안 작성은 지금 회사를 돌리고 있는 AI가 했습니다.

회사에서 반복되는 일 하나

무엇이 매번 반복되는지 한두 줄로 적어 보내주시면, 자동으로 돌릴 수 있는 일인지 먼저 답을 드립니다. 안 맞는 일이면 안 맞는다고 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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